내가_OO_못하는_이유/내가 글을 못쓰는 이유

가을의 끝자락을 붙드느라

의 19호실 2020. 11. 5. 11:30

가을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다. 내가 태어난 계절이기도 하고 많은 것들이 무르익어가며 아름다운 결실을 맺는 계절이라서. 또 가을은 마지막 혼을 불태우듯, 잘 익은 사과랑 누가 더 가을의 빛을 담고 있는지 내기를 하듯, 선명하고 붉은 노을을 자랑하는 계절이라서. 이 열정 가득한 가을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2020년의 가을은 기다리는 사람 애타게 참 천천히 왔다. 그런데 올해 가을은 겨울에 등 떠밀려 빨리 떠난다고 하더라. 난 어떤 안 좋은 일이 있어도 청명한 가을 하늘만 보면 답답한 마음이 뻥 뚫리는데, 그 속 시원한 하늘을 오래 즐길 수 없다는 생각에 다급해졌다. 그리고 하루하루 깊어가는 가을의 청취를 느낄 수 있는 나들이 장소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방역 수칙 잘 준수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올해 가을은 중국발 황사, 미세먼지의 영향을 적게 받아 더 아름다워, 지치는 줄 모르고 열심히 돌아다녔다. 원주의 '뮤지엄 산', 인왕산 둘레길, 창덕궁, 올림픽공원, 홍제천, 불광천 등. 바쁜 와중에도 지역 가리지 않고 참 많은 곳을 다녔네. 

 

 

 


아, 그런데 참 신기한 게 장소마다 다른 가을이 있었다. 뮤지엄 산은 물에 비치는 단풍의 색마저 강렬해 보이는 원색의 가을을, 창덕궁은 입구부터 형형색색의 단풍이 그 자태를 뽐내면서도 고궁과의 조화는 잃지 않는 오묘한 가을을 보여주었다. 또 어느 곳은 더 멋지고 예쁜 모습 보여주며 떠나려는 사람 붙잡고 질척이는 듯한 가을을 보여주는 듯하기도 했다.

이렇게 날마다 장소마다 다른 매력을 발산하는 가을인데, 글 쓴다고 방에만 있기엔 아쉽지 않을까? 그래서 난 오늘도 나간다. 그리고 내일은 또 어디 갈지 생각해본다. 

그렇게 난 오늘도 글을 못썼다.
가을의 끝자락을 붙드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