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완벽주의자, 겁쟁이라서
오후 8시 30분, 오늘의 글쓰기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책상 앞에 앉은 시간.
오후 11시, 첫 문장을 쓴 시간.
두시간 반동안 난 뭘 했는가. 나는 거의 항상 이런 식인 것 같다. 주저하고 변명하다 마감 시간 다되어 허둥지둥. 오늘 주저하는 동안에는 무슨 생각을 했냐면, '뭘 쓰지? 첫문장 어떻게 써야할까? 내용 구성은 어떻게 하지?' 등. 사실 이 생각들은 정말 잠깐 했고 '글 하나 쓰는데 난 매번 뭘 그리 복잡하게 생각할까?'를 오래 고민했다.
고민의 결과
첫째, 난 날 것 그대로의 내 글을 보여주길 두려워하고 둘째, 비난보다는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하는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뛰어난 작가일수록 퇴고에 심혈을 기울인다 한다. 또 어떤 작가는 영혼이 소각당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할 정도로 퇴고를 한다는데, 내가 뭐라고 퇴고도 고민도 없이 처음부터 완벽한 글을 쓰려 하나.
글은 은연중에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창작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더 시작을 과감히 못하는 것 같다. 글마다 작가만의 성향, 성격, 취향 등이 느껴지듯 내 글에서도 내가 너무 드러날까봐, 그래서 다듬어지지 않은 글을 내보이면 내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기분이라. 한마디로 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게 조금 무섭달까?
비난보다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하는 마음은 내 어린시절의 기억에서 기인한 성격이다. 우리나라의 교육 특성상 어릴적부터 참 많은 평가를 받고 그에 따라 잘하고 못하고가 나눠진다.
이걸 극명히 느꼈던 순간은 중학생 때 영어학원 입학 시험에서 떨어지던 순간이었다. 부담감 없이 쌓아왔던 영어 실력으로 당락 여부가 결정된다는 건 어린 나에게 큰 시련으로 다가왔다. 수능과 대입 합격 여부는 수년간 마음의 준비라도 할 수 있지, 당시의 영어 학원 입학 시험은 예상치도 못한 타이밍에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본거라 더욱 당혹스러웠다. 결과는 앞서 말했듯 '낙'. 보통의 학생들과 별 다를 바 없이 영어를 구사하는 수준이라 내가 못한다는 생각은 안 해봤는데 중등학원에 거절 당하니, 조금은 수치스럽기도 했다. '무슨 중등학원을 떨어지나.' 이런 생각에.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히 떨어질만했다. 이름난 외고에만 백 명 훨씬 넘게 보내던 외고 전문 학원이었으니….
이런 일련의 경험들이 트라우마가 된 걸까. 난 여전히 평가받는 걸 두려워한다.
아무튼 이런 과거와 나의 성격으로 글쓰기의 시작이 참 어렵다. 그래서 컨셉진100일 글쓰기도 시작해봤는데, 이 미션이 끝나면 내 부담감이 좀 덜어지길 바란다.
급 과거 고백이 된 오늘의 글쓰기.
게으른 완벽주의자, 겁쟁이라 글을 못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