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치 않은 만남 그리고 친구의 결혼식
내 결혼식도 아닌데, 작년 언젠가 친구의 결혼 예정 소식을 들은 순간부터 고민에 빠졌다. 뭘 입고 가야 하나, 오래 못 봤던 동기들과 선배들을 만나게 될 텐데 어색해서 어쩌나 등.
사실 제일 신경 쓰였던 건 전 남자친구와의 만남을 피할 수 없다는 것. 이쯤 되면 짐작되겠지만 나, 전남친, 내 친구는 동기 사이이고 친구의 결혼 상대는 같은 과 선배이다.
전남친과는 헤어지고 연락한 적도 없고 우연히라도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이인데, 친구의 결혼식으로 만남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뭐, 다시 이 친구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그렇다고 평소 하고 다니는 스타일을 있는 그대로 보이고 싶진 않았다. 평소에 매우 헐렁하게 그리고 적나라한 민낯으로 다니는 편.
그래서 친구의 결혼 예정 소식을 듣고 1차로 걱정, 청첩장을 받은 순간부터 2차로 걱정 시작. 진짜로 친구의 결혼식을 3주 정도 앞둔 시점부터는 갖고 있는 옷이 별로인 것 같다며 괜히 옷도 더 사고 새 옷 입는 김에 옷태 살려야 하지 않겠냐며 다이어트도 하고 그랬다.
내 결혼식이 아닌데, 주인공은 친구인데,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왜 이러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어느 순간 현타가 오기도 했다. 현타가 온 날이면 더더욱 잠을 못 이뤘다.
그리고 이런 생각과 마음은 어디에서 온 건지 고민했다.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맘이 아니라는 건 분명하니 Pass. 그럼 아쉬워서? 연애를 안 하면 안 했지, 그 친구랑은 절대 만나지 않겠다는 생각에 변함없으니, 이 또한 Pass. 도저히 뭔지 몰라서 친구에게 물어봤다.
ㅡ OO야, 전남친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안 좋은데 왜 안 좋은지 몰라서, 기분이 더러워.
ㅡ 걔가 잘 지내는 것도, 웃는 것도 보고 싶지 않은 거야?
ㅡ 아니, 잘 지내든 못 지내든 상관없는데 그냥 뭐랄까, 내가 못 지내는 것처럼 보이고 싶진 않네.
ㅡ 미련이 남은 건가?
ㅡ 내 성격에?ㅋㅋㅋㅋ
ㅡ 맞아, 너 성격에 미련이 남았으면 헤어지자는 말도 안 했겠지. 그럼 미련이 아니라면 아직 미움의 감정이 남아있나 봐.
순간 탄식했다. 맞는 것 같다. 아직 내 맘속에는 그 친구를 원망하는 맘이 남아있는 것 같다. 헤어진 지 5년이 지났는데 뭐가 그리 밉고 원망스럽나.
이 복잡한 마음의 근원이 '미움'이라는 걸 알게 됐으니, 이제 고민하느라 잠 못 이루는 밤이 끝나나 싶었는데,
왜 아직도 원망스럽나를 고민하며 또 잠을 못 자겠구나. 이건 다음 글에 쓰기로 하고, 일단은 조금이라도 자고 결혼식 가자.
기쁘게 축하해 줘야 할 결혼식인데 퀭하게 갈 순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