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_OO_못하는_이유/내가 잠을 못자는 이유

건강한 우정, 낭만적인 관계

의 19호실 2020. 12. 27. 23:57

오늘 어떠한 질문을 받았다. ‘지금까지 봐온 장면 중 가장 ‘낭만적인 모습’은 무엇인가요?’
질문에 대한 답을 작성하기 전에 ‘낭만’이 무엇인지부터 찾아봤다. 제법 오래 낭만을 잊고 살아서, 어떤 게 낭만적인 모습인지 헷갈려서.
사전을 찾아보니 낭만은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를 의미한다고 한다. 사전적 풀이를 보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 매이지 않는다는 게, 현실 속에서는 거의 보기 힘들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닐까?’ 이런….

내가 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드라마 ‘멜로가 체질’의 한 장면이었다. 드라마 속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은정’이 친구들에게 ‘나 힘들어. 안아줘.’라 말하자, 친구들이 은정이를 안아주며 고맙다 말하고 함께 울어주는 장면.
극 중에서 은정이는 큰 상실을 겪고도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이어가고 혼자 속으로 모든 걸 짊어지려는 인물이었다. 친구들은 그런 위태로운 은정이를 다그치지 않고 은정이가 자신의 상처를 마주할 때까지 기다려줬고.


우리는… 나는... 주위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을 때면, 공감해 주고 싶거나 해결해 주고 싶어서 또는 내 마음 편하자고 그 사람이 고민을 빨리 털어놓길 바라는 것 같다. 어떤 때는 외면하기도 하고.
이런 나의 모습을 비추어봤을 때, 은정이의 친구들은 그저 곁을 묵묵히 지키고 은정이가 도움을 요청할 때까지 기다려줬다는 점에서 참 성숙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항상 괜찮기를 요구하는 사회에서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드러내는 게 쉽지 않은데, 그래서 보통은 자신의 치부를 감추려 하는데, 은정이는 자신이 아프다는 걸 인정하고 그걸 친구들에게 드러낼 줄 알아서 대단해 보였다.
한마디로 은정이와 친구들 모두 건강하고 성숙하고 낭만적인 관계를 맺어갈 줄 아는 사람들로 보였다.

‘건강한 우정, 낭만적인 관계’에 대한 나의 평소 생각과 잘 맞아떨어지는 극 중 인물들, 극 중 장면을 이렇게 곱씹어 보고 나니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장면이 내게 가장 낭만적인 모습이라는 건, 내 현실 속에서는 거의 보기 힘든 장면인 게 아닐까. 내 친구들도 날 기다려줄 수 있을까. 무엇보다 내가 내 상처를 마주하고 드러낼 수 있을까. 상처받아도 홀로 털어내고 난 이제 괜찮다고, 별일 아니었다고 말하는 내가 은정이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낭만을 꿈꾸기 전에, 나의 낭만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기 전에 나부터 달라져야 하는 게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낭만을 그저 낭만만으로 끝내진 않고 현실로 가져올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친구들과 건강한 우정과 낭만적인 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지 밤 지새우며 고민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