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_OO_못하는_이유/내가 글을 못쓰는 이유

노래에 뺨 맞고 위로받다 보면

의 19호실 2020. 11. 9. 21:45

나는 하루의 절반 이상을 음악과 함께 한다. 출퇴근길에도, 근무 중에도, 잠들기 직전까지도 노래를 듣는다. 가사를 유심히 들여다본다거나 코드, 리듬 등 곡의 요소를 하나하나 분석하며 듣는 건 아니다. 그저 항상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틀어놓는 엄마 덕분에 어릴 때부터 대부분의 시간을 음악과 함께 보내는 게 어색하지 않을 뿐이다. 
수학 문제를 풀거나 시간에 쫓겨 무언가를 끝내야 할 땐 비트감이 돋보이는 곡 또는 장엄한 클래식 곡을, 책을 읽거나 잠을 청할 때는 잔잔한 음악을 듣는다. 또 글을 쓰거나 일하다 화가 날 때는 격한 노동요를 듣는다. 내 노동요 플레이리스트 중 한 곡만 공유해보자면 바로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Work Bitch'. 해석하면 '일해, 이년아!'.

ㅡ You wanna, you wanna
You want a hot body? You want a Bugatti?
You want a Maserati? You better work bitch


이런 가사가 반복되는 곡인데 특히 'work bitch' 이 부분을 들을 때마다 동기부여가 팍팍 된다. 마지막에 work work 하는 부분에서는 여전히 정신 못 차리는 날 깨우기 위해 브리트니가 박자 맞춰 뺨 때리는 듯한 느낌도 들고. 한마디로 일하기 싫을 때는 이 곡을 듣고 '알겠어요, 언니. 일하러 갈게요.'라며 마음을 다잡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억지로 내 맘을 다잡기 위해, 정신 차리기 위해 뺨 때리는 곡만 들으면 좀 슬프지 않을까. 그래서 노동요를 듣고 난 뒤에는 꼭 위로곡을 찾는다. 내 인생 위로곡은 가수 비투비의 '괜찮아요'이다.  

ㅡ 매일 같은 일상에 힘든가요. 그건 누구를 위한거죠.
ㅡ 대학서 배운 건 다 까먹었어.
ㅡ 실업자 100만 시대 그런 건 잘 모르겠고 그 숫자가 차라리 통장 잔고였음 좋겠어

이 얼마나 솔직하고 현실적인 가사인가. 이별과 취준 등으로 한참 힘들었던 2015년, 이쁜 말로만 위로하려 들지 않는 이 곡은 단번에 나의 마음 깊이 박혔다. 그리고 2020년에도 여전히 나의 위로곡 플레이리스트 상단에 자리 잡고 있다. (사실 이 곡을 계기로 나의 첫 덕질이 시작되었는데, 이 이야기는 다음에 푸는 걸로! :D )

아무튼 이렇게 노래에 뺨 맞고 위로받기를 반복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린다. 무얼 하고 있었는지, 무얼 하려고 했는지도 잊고 노래 감상에 집중하고 있다는 말…. (한숨)
월급의 노예라 근무 중에는 노래를 집중해서 듣다가도, 곧 가볍게 흘러보내기 좋은 노래로 바꾸고 다시 일하기 시작하지만. 개인적인 일을 하거나 글을 쓸 때에는 '노래에 뺨 맞고 위로받기'의 사이클에 빠져 돌아오지 못한 나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대충 오늘도 내가 글을 못 쓴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