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_OO_못하는_이유/내가 글을 못쓰는 이유

악수의 나비효과

의 19호실 2020. 12. 9. 13:03

어제 라떼를 만났다. 아니, 만났다기보다는 짧게 스쳐 지나갔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겠다. 퇴근하는 중에 두 사람의 교착지에서 단지 5분 동안 봤으니까.
5분 남짓한 시간 동안 지하철역에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만남의 이유였던 물건을 주고받은 후에 너무 오랜만이라고 아픈 데 없이 무사하냐고 묻는 것만 할 수 있었다. 마스크를 내릴 수 없었으니까. 아, 그리고 또 언제 만날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잘 지내라고 긴 악수를 나눴다.

그런데 오늘 퇴근길에 라떼가 카톡으로 내 이름을 진지하게 불렀다. 평소에 장난기 가득 담아 멍정이라 불렀는데. 이내 이어진 메시지는 친구의 직장동료가 오늘 늦은 오후에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자세한 얘기를 들어보니 라떼와 접점이 꽤 많았던 듯했다. 보건소로부터 밀접 접촉자라는 연락은 아직 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아무튼 친구는 본인도 정신없을 텐데 그 와중에 나에게도 혹시 모를 위험을 알렸다. 5분 동안의 만남 중에 이루어졌던 악수 때문에 초래된 위험.
이렇게 나도 일말의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에 처하니, 오만게 다 걱정되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들은 어쩌나, 가능한 방에만 있고 마스크 끼고 있어야 하나, 회사에 정상 출근해도 되나.' 등 끊임없는 걱정이 따라왔다. 이런 걱정은 아직 현재진행형. 

이런 나보다 더 걱정되는 건 라떼의 안위. 당장에 친구와 친구의 가족들은 어쩌나. 자가격리 기간 동안 친구는 얼마나 불안에 떨어야할까. 

그런데 친구는 재택근무로는 할 수 없는 급한 업무로 여태 퇴근하지 못하고 있다. 내일부터 바로 회사 전 직원이 자가격리 할 예정이라 오늘까지 그 일들을 처리해야 한다고 한다. 
일보다 사람이 먼저이지 않나 생각이 들면서도, 회사에 딸린 식구들과 하청 업체들을 생각하면 이해는 되고. 사람은 빠져야 하는데 일은 그대로인 이 상황에 마음이 참 그렇다. 
당장에 급한 일 처리하고 친구가 1분이라도 빨리 안전한 곳에 가길 바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친구와 친구의 동료분들에게 제발 아무 일 없기를…. 

고작 악수 한 번 그리고 건너건너 아는 사람의 코로나19 감염.
악수의 나비효과로 걱정에 빠져 글쓰기에 집중할 수 없는 밤.